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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이유와 인조의 굴욕 본문
안녕하세요 <비이슈>역사이야기입니다.
조선에는 두 번의 반정"反正"(왕을 폐위시키고 새로 왕을 세우는 일)이 있었는데 1506년 중종반정과 1623년 인조반정입니다.
사실 세조(수양대군)가 왕위에 오른 것도 반정으로 말할 수 있지만 단종을 폐위시킨 것이 아니라 단종의 주변 인물을 제거하면서(계유정난 1453년) 임금의 자리를 양위받았기 때문에 반정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세조반정"을 조선의 첫 번째 반정으로 말하기도 하며, "세조찬위", "단종 폐위 사건"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이란 "이귀", "김유" 등의 서인 세력들이 1623년 4월 11일에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인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입니다.
<드라마와 영화속의 광해>
"광해군"은 선조(14대 왕)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1575년 2남으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혼"李琿"입니다.
또한 "인조"는 선조의 5남 인 "원종"의 아들(선조의 손자)로 1595년에 출생했으며 본명은 이종"李倧"입니다.
14대 선조 (출생 1552년 ~ 1608년, 재위 1567년 ~ 1608년)
15대 광해군 (출생 1575년 ~ 1641년, 재위 1608년 ~1623년)
16대 인조 (출생 1595년 ~ 1649년, 재위 1623년 ~ 1649년)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분조"分祖"활동 등으로 국난을 극복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선조에 이어 15대 임금으로 등극합니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이후 왕권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형 임해군과 동생 영창대군을 제거했고 또한 영창대군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선조)의 아내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킵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립 정책을 펼쳤습니다. (명나라에서 지원 요청이 있자 강홍립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파견했지만 후금에게 일부로 투항하게 했음)
<드라마와 영화속의 인조>
당시 광해군은 "대북파"의 지지를 받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서인" 세력은 권력에서 소외되었습니다.
또한 위와 같은 일(패륜을 저지르고 명나라를 배반했다는 일)로 서인들은 불만은 극에 달했고 1623년에 무력으로 반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인조"仁祖")을 옹립하게 됩니다.
인조반정(1623년) 후 광해군은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로 보내졌고 1641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당연히 기존에 명나라와는 화친하고 "후금"과는 대립하는 정책(반금 친명)을 펼치게 되면서 "후금"과의 전쟁이 일어나 형제 관계를 맺게 됩니다.(정묘호란 1627년)
이후 후금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차지하게 되면서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었고 다시 조선을 침공해 군신 관계를 요구하였고(병자호란 1636년)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하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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