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이슈
연산군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배경과 갑자사화 본문
안녕하세요. <비이슈>역사 이야기입니다.
고려의 무장이었던 이성계가 신진사대부들과 1392년 세운 조선은 모두 27명의 임금이 있었지만 왕위를 이어받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1대 왕 태조 이성계도 둘째 부인이었던 "신덕왕후 강씨"의 막내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여 다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5남 "이방원"이 불만을 품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이후 형(2대 정종)에게 일단 왕위를 양보한 후 2년 만에 3대 임금(태종)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크게 왕위를 강제로 찬탈한 사건이 3번 있었습니다.
세조(수양대군)가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아 강제로 "단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오른 사건과 "인조반정(서인 일파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즉위한 사건)" 그리고 "중종반정"입니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이란 1506년에 일으킨 반정으로 연산군(10대 왕)을 폐위시키고 중종(11대 왕)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연산군 (정진영)
"연산군"과 "중종" 모두 조선 9대 임금 성종"成宗"의 아들로 연산군은 "폐비 윤씨"사이에서 1476년 출생했으며 중종은 "정현왕후 윤씨"사이에서 1488년 태어났습니다.
9대 성종 (출생 1457년 ~ 1494년, 재위 1469년 ~ 1494년)
10대 연산군 (출생 1476년 ~ 1506년, 재위 1494년 ~ 1506년)
11대 중종 (출생 1488년 ~ 1544년, 재위 1506년 ~ 1544년)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시기는 새로운 정치 세력 "사림파(성리학을 중심의 양반 지배층)"와 "훈구파(세조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공을 세운 정치 집단)"의 정치적 대립이 심했던 시기입니다.
연산군은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사림파"의 많은 세력을 제거했고 또한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키며 훈구파의 세력까지 제거하게 됩니다.
특히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어머니(폐비 윤씨)가 폐비되고 사사"賜死"되었던 경위(성종의 후궁 "엄숙의"와 "정숙의" 그리고 인수대비가 합심하여 어머니를 배척했다는 내용)를 알게 되면서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두 번의 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로 양쪽 모두의 정치 세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당연히 극도로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또한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은 세력들을 제거하면서 폭정을 거듭했고 많은 악행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속했다고 합니다.
이에 1506년 "훈구파"을 중심으로 임금을 폐위시키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으며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이 중심으로 궁궐로 들어가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중종)을 옹립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의 정치는 끝이 났지만 왕권이 약해지고 반정을 주도한 세력이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또다른 많은 전횡이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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