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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슈

숙종 아들 경종과 영인군 이금(영조) 왕위 계승 과정 본문

역사 이슈

숙종 아들 경종과 영인군 이금(영조) 왕위 계승 과정

펙트콜 2019. 1. 31. 12:53

안녕하세요.  <비이슈>역사 이슈입니다.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는 숙종(19대 왕 재위: 1674~1720)과 "숙빈 최씨"사이에서 1694년 4남으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금"李昑"입니다.


세자 자리에는 "숙종"과 "희빈 장씨"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 "이윤(경종)"이 원자에 책봉되었고 "이금"은 6세에 "영인군"으로 봉해졌습니다.(2남 "성수", 3남 "영수"는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났음)


하지만 세자 "이윤"의 생모 "장씨"가 희빈으로 격하되고 1701년 결국 사사되자 세자 교체설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남인"에게 동정적이었던 "소론"의 지지를 받고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장희빈(희빈 장씨)"의 몰락과 함께 "노론"세력이 권력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에서의 (숙종)

 <해치>, <대박>, <동이>, <장옥정>


"노론" 세력은 "희빈 장씨"가 사사되었던 이유에 상당 부분 관여하기도 했는데 "이윤(경종)"이 왕위에 오를 경우 화를 입을 것을 경계했고 "영인군(영조)"을 세자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극에 달하는 가운데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결국 "이윤(경종)"이 1720년 조선 20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경종(재위 : 1720~1724)"은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노론"은 이복동생인 "영인군(영조)"을 왕세자로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대박> 경종(현우)


결국 임금을 압박하여 "영인군"을 왕세자로 만들었지만 "노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경종"이 몸이 좋지 않으니 대리청정(왕세자가 왕의 대신해 정치를 하는 일)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노론"이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면서 경종은 "노론"의 4 대신(김창집, 이건명, 이이명, 조태채)을 유배 보냈습니다. (신축옥사:1721년)


이러한 배경으로 기회를 잡은 "소론 세력"은 "노론"이 "경종"을 시해하려는 모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미 유배를 보낸 4 대신과 함께 "노론 세력" 60여 명을 제거하고 170여 명을 유배를 보내게 됩니다.(임인옥사:1722년)


<영조 어진 복원본>


드라마와 영화속의 <영조>


이후 조선은 "소론"의 세상이 되었고 권력의 위협이 되는 "영인군"도 자리가 위태로웠지만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의 도움과 "경종"의 배려로 왕세자의 자리를 유지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몸이 좋지 않았던 "경종"은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인 1724년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영인군(영조)"이 조선 21대 왕으로 즉위합니다.


영조(재위 1724~1776)는 왕위에 오르자 극도로 과열된 붕당 간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탕평책(정치세력의 균형 정책)을 실시했고 백성을 위한 정치와 함께 각 분야에서 조선의 부흥기를 이끌며 52년간 집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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