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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슈

조선시대 4대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본문

역사 이슈

조선시대 4대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펙트콜 2019. 2. 11. 15:11

안녕하세요. <비이슈>역사 이야기입니다.


사화"士禍"란 "사림의 화"의 준말로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반대파에 의해 제거되거나 화를 입을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대표적으로 4번의 사화가 있습니다.


연산군(조선 10대 왕) 시대에 일어난 무오사화(1498년)와 갑자사화(1504년)와 함께 조선시대 "4대 사화"인 기묘사화(1519년)는 중종 14년에 일어났으며 을사사화(1519년)는 명종 즉위년도에 일어났습니다.


연산군(재위 : 1494~1506)시대는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훈구파"와 성종 이후로 세력을 확장한 "사림파"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무오사화"로 사림파의 세력을 그리고 "갑자사화"로 훈구파의 세력과 사림파의 남아있는 세력까지 제거하면서 연산군은 폭정을 거듭했습니다.


이에 "훈구파"의 세력을 중심으로 연산군의 폐위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 진성대군(중종)을 왕을 추대합니다.


중종 어진


중종(조선 11대 왕 재위:1506~1544)이 왕위에 오르는데 공이 있던 "훈구파"는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연산군의 폐정을 개혁하기 위해서 "사림파"도 중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 이어지게 되는데 "사림파"는 "조광조"를 중심으로 더욱더 급진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했고 이러한 일들이 "훈구파"는 물론 "중종"의 눈밖에 나기 시작합니다.


"훈구파"는 "중종"이 "조광조"에 대한 신뢰가 끝났음을 간파하고 조광조를 모함으로 몰았으며 "중종"도 이를 수용해 1519년(중종 14년) 기묘"己卯"년에 사림파를 숙청하는데 이를 "기묘사화"라고 합니다.



"을사사화(1519년)"는 중종의 아들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외척의 다툼으로 사림이 또다시 크게 화를 입은 사건입니다.


<영화와 드라마 배역으로 본 9~14대 왕>



"중종"이 1544년 세상을 떠나자 "인종"이 12대 왕으로 즉위했지만 8개월 만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어 12세 나이로 조선 13대 왕에 즉위한 명종(재위:1545~1567)은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인종"과 배다른 형제인 "명종"이 즉위하면서 갑자기 외척의 실세도 바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윤임"과 "윤원형"의 권력다툼으로 1519년 많은 선비들이 숙청되었습니다.


사실 "을사사화"도 깊게 들어가 보면 사림파의 세력이 중앙 정치 무대에 도전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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