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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슈

조선시대 4대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본문

역사 이슈

조선시대 4대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펙트콜 2019. 2. 8. 16:32
안녕하세요. <비이슈>역사 이야기입니다.

먼저 사화"士禍"란 "사림의 화"를 뜻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정계의 선비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들에게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에 대표적으로 4번의 사화가 있었는데 발생한 해의 간지를 따라 1498년 "무오사화", 1504년 "갑자사화", 1519년 "기묘사화", 1545년 "을사사화"가 그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기득권을 가진 세력과 또한 개혁을 표방하며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세력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훈구파, 사림파, 절의파, 청담파 등등)


세조(조선 7대 왕 재위:1455~1468)가 왕위에 오르는데 도움을 주며 높은 지위에 올라 세력을 확장한 세력이 "훈구파"이며 성종(조선 9대 왕 재위:1469년~1494년) 이후로 성장한 세력이 "사림파"입니다.


"사림파"가 "훈구파"의 부패와 비리 등을 비판하고 고발하면서 시작된 대립은 연산군(조선 10대 왕 재위:1494~1506)이 즉위하면서 극에 달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 연산군(정진영)


1498년(연산군 4년) "훈구파"가 "사림파"를 견제하기 벌인 "무오사화"는 당시 사관으로 있었던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史草"에 기록한 것을 발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조의제문"의 내용이 세조가 단종에게 왕위를 찬탈한 일을 비판한 것이라는 "훈구파"의 주장으로 "연산군"을 자극하여 사림파 학자들을 제거한 사건입니다.


"연산군"의 입장에서는 사림파가 세조에 뒤를 이은 예종, 성종 그리고 본인까지 이어진 왕위에 대한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연산군"은 사사건건 자신의 정책에 간섭하는 "사림파"를 벼르고 있었던 시기로 김종직 계열의 "사림파"를 권력에서 몰아냅니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며 사림파의 존경을 받는 김종직(1431~1492)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중국 초나라의 "항우"가 "의제"를 폐위시킨 일을 지은 글로 수양대군(세조)의 왕위찬탈을 은근히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무오사화"로 왕권은 강해지고 권력의 중심에는 다시 "훈구파"가 떠올랐지만 6년 후에 더 큰 비극이 찾아옵니다.



1504년(연산군 10년) 일어난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친어머니 "폐비 윤씨"의 폐출 사건을 들추어서 훈구파는 물론 남아있던 사림파의 세력까지 제거한 사건입니다.


당시 "훈구파"는 "연산군"의 전횡이 심해지자 간언을 올리기 시작했고 왕권에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한 연산군은 "훈구파"도 탄압할 것을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때 "임사홍"이라는 간신이 조정을 장악하기 위해 "폐비 윤씨" 폐출과 사사의 경위를 "연산군"에게 밀고하면서 더욱 사건이 확대되었습니다.


갑자"甲子"년 연산군은 어머니의 폐비에 찬성한 신하들과 또한 자신에게 불만을 품던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제거합니다.


"갑자사화"는 정치적 세력 간의 대립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많은 선비가 죽음을 당하고 또는 귀향 보내졌기 때문에 사화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무오사화, "갑자사화"와 함께 조선시대 4대 사화로 불리는 "기묘사화""을사사화"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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