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역사 이슈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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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 이슈입니다. 인조반정"仁祖反正"(1623년)으로 광해군(15대 왕 재위:1608~1623)을 몰아내고 인조(16대 왕 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인조반정의 배경에는 "대북파"의 지지로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던 "서인"들의 세력이 소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인"들은 광해군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자 지속적으로 불만은 증폭되었습니다. 이때 "명나라"와 "후금"과의 전쟁이 있었는데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어려워진 조선의 사정을 생각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 정책으로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했습니다. 또한 광해군은 당시 왕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형 임해군과 동생 영창대군을 제거했고 선조의 아내 인목대비를 폐위시..
안녕하세요. 역사이슈입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조선의 26대 왕 고종"高宗"(재위 1863~1907)의 아버지로 어린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섭정을 시작하면서 조선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인물입니다. 철종(25대 왕 재위 1849~1863)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권이 더욱 약해졌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절정에 달하면서 민심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안동김씨"는 멈추지 않고 왕실을 통제하고 위협하는 수준까지 오르게 되면서 자신들과 뜻이 맞지 않는 왕족은 누명을 씌우거나 귀향을 보내는 일까지 하게 됩니다. 이하응(흥선대원군 본명)은 "영조(21대 왕)"의 현손 남연군 이구의 넷째 아들로 왕족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안동김씨"의 표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하응"은 이러한 것..
안녕하세요. 역사 입니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일본의 자객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조선의 왕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을미년에 일어난 변"이라고 해서 "을미사변"이라 부르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시대적 배경과 이유 등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은 자신들의 힘으로 수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게 됩니다. 일본도 호시탐탐 조선을 침략하고 대륙으로 진출할 기회를 찾던 중이라 군대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동학 농민 운동"이 진정 국면으로 전환되었지만 일본은 조선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조선에 친일 내각을 세우고 청나라와 대립하게 됩니다. 결국 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대립하던..
안녕하세요. 역사이야기입니다. 조선"朝鮮"은 쇠퇴한 고려왕조를 신흥사대부 세력과 무장 이성계가 세운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조로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고종 황제가 즉위한 뒤인 1897년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기도 했지만 통상적으로 일본의 강압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1910년까지를 조선왕조로 말합니다. 조선의 왕위 계승 원칙은 적장자(왕비가 낳은 맏아들)에게 있었지만 적장자가 없거가 적장자에게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다음 아들이나 왕의 형제가 임금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선조, 철종, 고종 등과 같이 방계 출신이 왕위를 이어받기도 했으며 세조, 중종, 인조 등은 왕위를 찬탈하는 반정"反正"으로 임금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지금부터 조선왕조 왕 이름과 가계도, 연..
안녕하세요. 역사 이야기입니다. 고려의 무장이었던 이성계가 신진사대부들과 1392년 세운 조선은 모두 27명의 임금이 있었지만 왕위를 이어받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1대 왕 태조 이성계도 둘째 부인이었던 "신덕왕후 강씨"의 막내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여 다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5남 "이방원"이 불만을 품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이후 형(2대 정종)에게 일단 왕위를 양보한 후 2년 만에 3대 임금(태종)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크게 왕위를 강제로 찬탈한 사건이 3번 있었습니다. 세조(수양대군)가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아 강제로 "단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오른 사건과 "인조반정(서인 일파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안녕하세요 역사이야기입니다. 조선에는 두 번의 반정"反正"(왕을 폐위시키고 새로 왕을 세우는 일)이 있었는데 1506년 중종반정과 1623년 인조반정입니다. 사실 세조(수양대군)가 왕위에 오른 것도 반정으로 말할 수 있지만 단종을 폐위시킨 것이 아니라 단종의 주변 인물을 제거하면서(계유정난 1453년) 임금의 자리를 양위받았기 때문에 반정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세조반정"을 조선의 첫 번째 반정으로 말하기도 하며, "세조찬위", "단종 폐위 사건"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이란 "이귀", "김유" 등의 서인 세력들이 1623년 4월 11일에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인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입니다. "광해군"은 선조(14대 왕)와 "공빈 김씨" ..
안녕하세요. 역사 이야기입니다. 조선은 고려의 무장이었던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 고려를 멸망시키고 1392년 건국한 나라로 1910년까지 518년 동안 27명의 왕이 다스렸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이름 뒤에 대군"大君"이나 군"君"으로 불리었고 왕이 된 후에는 "상감마마", "폐하", "전하" 등으로 불리었습니다.(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되어 벌을 받았습니다.) 이후 임금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업적을 평가하여 "종"이나 "조"로 끝나는 묘호"廟號"(임금이 죽은 뒤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공덕을 칭송하며 붙이는 호)를 붙였습니다. 그렇다면 임금의 어떤 업적의 기준에 의해 뒤에 "종", "조", 또는 "군"으로 불리었을까요? 태조 이성계 어진 조"祖"(할아버지 조, 조상 조)의 묘..
조선 3대 왕 태종"太宗" 이방원(출생 1367년~1422년)은 조선 1대 왕 태조(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서 5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성계는 6명의 부인에게서 8남 5녀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이방원은 왕세자가 되지 못하자 불만을 품게 됩니다. 또한 왕세자도 자신의 형이 아닌 이복동생 방석(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아들)에게 돌아가자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방원은 군사를 동원하여 "방석(의안대군)"을 지지하는 많은 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형 "이방과(정종)"를 세자로 추대하였으며 이후 2대 왕 정종에게 양위를 받아 조선 3대 왕(재위 1400년 ~ 1418년)으로 즉위합니다. 태종 이방원 가계도를 드..